본문 바로가기
아이들과 가볼 곳 BEST

웅진백제역사관 천도 웅진 (백제의 역사)

by 짱박육아 2023. 5. 22.
반응형

역사는 이야기로 배우고 체험하는 것이 기억하기 가장 좋은 길입니다. 오늘은 웅진백제역사관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백제와 고구려의 싸움. 왜 백제는 천도를 했어야 하는가? 그 시대의 백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천도 웅진으로 가는 길.

겨울 10월, 도읍을 웅진으로 옮기다.
삼국사기 문주왕 원년 (475)

 
 
 

백제와 고구려의 전쟁 (475년)

백제는 북쪽으로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 백제는 북쪽으로, 고구려는 남쪽으로 영토를 넓히기 위해 서로 다투었다.
백제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 고국원왕이 숨지면서 고구려는 수세에 몰렸다. 그러나 국력을 키운 고구려는 광개토왕이 백제의 58개 성을 함락시키고 아신왕에게 신하의 맹세를 받아내며 백제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광개토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장수왕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자, 백제는 성을 쌍고 중국 북위에 구원을 요청하는 등 고구려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고구려는 승려 도림을 첩자로 보내 백제의 내부 사정을 파악하고 있었다. 결국 475년 9월 고구려는 한강을 건너 백제를 공격하여 수도 한성을 함락시키고 백제 개로왕을 죽였다. 혼란한 상황에서 왕위를 이어받게 된 문주왕은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중심이 될 새로운 수도를 찾아야 했다.


웅진백제역사관

 

무령왕릉과 왕릉원

공주시 금성동과 웅진동의 경계에 있는  (옛 지명은 공주읍 송산리 송산의) 남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웅진시대 475~588 백제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다. 원래 17기의 무덤이 조사되었지만, 현재는 무령왕릉을 포함하여 1~6호분까지 7기만 복원되어 있다. 이들 무덤은 만들어진 형태에 따라 굴식돌방무덤과 벽돌무덤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1~5호분은 백제가 전통적으로 사용한 굴식돌방무덤으로, 돌로 널방을 만든 후 천장을 돔 형태로 둥글게 마무리하였으며, 6호분과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으로 터널형의 널방 앞에 짧은 터널형 널길을 가지고 있다. 무령왕릉을 제외한 나머지 무덤들은 도굴로 인하여 부장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웅진시대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활발했던 대외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유적이다. 2015년 7월 8일,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백제의 두번째 수도가 된 웅진은 정치, 경제, 문화중심지로서 성장하였다.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대를 거쳐 왕권이 안정되고 국방력이 강해지면서 무령왕대에 이르러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서남쪽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국경의 방어를 튼튼히 하였으며, 제방과 저수지 등을 정비하여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켰다. 사회적 안정을 바탕으로 백제는 예술, 건축, 공예 등 다양한 문화를 꽃피웠다. 
 
공주에 있는 웅진백제역사관입니다.
무령왕릉과 함께 아이들과 역사속으로 떠나보세요.
 

웅진백제역사관

 

 

 

 

웅진백제역사관 전시관 소개

웅진백제역사관은 백제가 두 번째 수도로 선택한 웅진, 지금의 공주에서 이어진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기 위해 건립된 전시관입니다. 다양한 미디어 기법으로 공주시내 곳곳에 남아있는 백

njoyjjang.com

 

반응형

TOP

Designed by 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