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고려 거란 전쟁을 보면서, 고려사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고 왜 장군들이 불만이 많았을까? 한참 이야기 했습니다. 역사와 다른 점이 분명히 있겠지만, 드라마로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무신정변에 대해서 알게되면, 삼국시대, 고구려, 발해, 조선시대에 일어난 난들과 비교가 되어 쉽게 기억이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1. 무신들의 불만
무신들은 고려시대에 군사적 역할을 수행하던 계층으로, 그들의 불만이 난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거란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지위가 낮았습니다. 이로 인해 무신들이 불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 문관 중심의 정치에 대한 불만
고려시대 정치는 주로 문관들이 주도하였습니다. 이 문관 중심의 정치 구조는 무신들에게 불만을 일으켰습니다.
3. 현종의 정책
고려 현종의 정책 역시 난의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현종은 거란과의 강화 후 군사비를 감축하였고, 이로 인해 무신들의 봉록이 감소하였습니다. 또한, 현종은 영업전을 회수하였는데, 이는 무신들의 권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4. 문신 중심 정치
황보유의와 장연우 등 문신들의 중심적인 정치 역시 무신들의 불만을 증폭시켰습니다. 이들의 정치 세력은 무신들의 권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황보유의와 장연우는 너무 재미있는 듀오였습니다. 이들의 만담을 볼 수 없다니. 너무 아쉽습니다. )
요약하자면, 무신들의 사회적 지위의 낮음, 문관 중심의 정치에 대한 불만, 현종의 정책, 그리고 문신 중심의 정치가 난의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김훈과 최질의 반란 과정
반란의 시작 (1014년 11월) - 고려거란 전쟁 24화
김훈과 최질은 서경(현재의 평양)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서경 유수 이자림은 서경 장락궁에서 현종과 함께 잔치를 벌이는 중에 반란군에게 습격당했습니다. 현종은 궁궐 밖으로 도망쳤고, 이자림은 김훈과 최질과 함께 서경을 장악하였습니다.
개경 진격 (1015년 1월) - 거려 거란 전쟁 24-25화
김훈과 최질은 개경으로 진격하였고, 개경이 함락되자 현종은 궁궐로 도피하였습니다. 김훈과 최질은 현종에게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제시하였습니다. 황보유의, 장연우 등 문신 처벌 무신들의 사회적 지위 향상 군사비 증액
난의 진압 (1015년 3월) - 고려 거란 전쟁 26화 (예정 : 스포 주의)
강감찬, 김주정 등의 군대에 의해 김훈과 최질은 패배하였고, 두 사람은 사망하였습니다. 난의 주모자들은 처형되었고, 그들의 가족은 노비로 강등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김훈과 최질의 서경 반란으로 시작하여 개경 진격, 그리고 강감찬과 김주정 등의 군대에 의한 진압으로 난은 끝났습니다.
아이들과 단종에 대해서도 관풍헌에 가서 직접 둘러보면서 아이들이 가진 흥미와 감정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이들과 재미있는 역사 공부를 박물관에서도 책으로도 현장체험으로도 그리고 "고려 거란 전쟁" 드라마로도 함께 해 보세요.